단종복위운동
단종복위운동
반강제로 왕위를 넘겨받은 세조의 자리를 다시 단종에게...
세조는 단종에게 왕위를 넘겨받는 형식으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실은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다나 세조는 집현전 출신 전 관료들의 생각과는 달리 왕권 강화를 통해 국왕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펼치고자 했으며,집현전 출신의 관료들은 신하 중심의 정치를 펼처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세조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은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다시 복위시키려는 운동을 펼친다.신하 성삼문은 세조가 반 강제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이를 안타까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짖는다.
성삼문 시조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한탄하노라
굶주려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캐어 먹어서야 되겠는가?
비록 산과 들에 절로 나는것들이라 하지만 그 누구의 땅에서 난것인가?
단종복위운동을 위해 세력을 모으다
이 시조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두 임금은 섬길 수 없다는 의지를 표출한 시다.
성삼문은 그 밖에 유성원,직제학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이라는 거사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면나라 사신이 온다고 하니 그때를 이용하면 어떻겠소?"
성삼문은 말했다.세조가 즉위한지 1년만에 명나라로 부터 왕과 왕비의 책봉을 승인하는 고명이 오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이 고명을 받아야 임금으로서의 권위를 세울 수 있었던것.
다음과 같은 의견에 모두들 찬성하고 세조와 그 아들을 죽일 계획을 세우나.그 보다 먼저 세조 측근을 모두 처치하여야 단종을 복위시킬 수 있다고 판단 비밀리에 단종 본위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거사 실패
6.2일 거사일이 밝았다.명나라 칙사들이 수강궁에 도착했고.단종과 태조를 비롯한 종친과 대신들도 모였다.
이때 세조의 충신인 한명회는 말했다.
"전하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되옵니다.오세자 마마는 경복궁으로 계시도록 하여 만약을 사태에 대비하고 별운검도 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하자.세조는 그 말에 따라 세자를 경복궁에 남게하고 별은검도 세우지 않았다.연회장소 들어와서야 이 일을 알게 된 성삼문 일행은 당황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거사일은 미루어지게 되었고.겁이 많았던 성삼문 동조자인 우찬성 정창손은 이와 같은 사실을 세조에게 고하여.그 진상이 들어나게된다.
세조는 단종복위운동을 뀌하던 신하들 및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처벌,귀양,사약을 받게되면사.단종복위 운동은 싱겁게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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