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黃鳥歌)-고구려2대왕 유리왕 황조가 이야기

2015. 5. 17. 13:14

 

황조가(黃鳥歌)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위와 함께 돌아갈가?

 

 

 작가:고구려 2대왕 유리왕 B.C 19년 ~ A.D 18년

 

 

시조 황조가


 

이 시조는 자신의 두 부인중 한명인 한나라 치희가 집을 나가자. 그녀를 찾으러 갔으나.그녀가 끝내 돌아오지 않겠다하자. 유리왕은 홀로 궁으로 다시 돌아오게되는데.문득 푸름이 짙은 나뭇가지 위로 뀌고리들이 짝을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유리왕은 자신의 처지에 쓸쓸함을 느끼고 지은 시조 황조가(黃鳥歌)를  지었다.

 



유리왕 황조가 이야기


 

 

유리왕 황조가 이야기

 

 

유리왕은 왕위에 오른 이듬해 7월 송양국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그리고 그후 3년 후 서기전 17년에 골천에 이궁을 이었고 그해 10월 왕비 송씨가 죽자 한나라 사람인 치엽의 딸 치희를 계실로 맞이했이니.

 

 

두 여자가 유리왕을 섬기게 되자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졌다.이를 보다 못한 유리왕은 이들을 따로 떨어져 살게 했으나. 그 두 여인의 갈등은 더 심해였다.

 

 

그 여인중 화희는 치희에게

 

 

" 너는 한나라의 천한 계집일 뿐이다. 어찌 감히 무례하게 구는가?"

 

 

하며 말하자. 이 말을 들은 치희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친정으로 돌아간다. 유리왕은 사실 화희보다 치희를 더 마음에 두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친정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를 설득해 보았지만. 결국 그녀의 뜻을 이기지 못하게 혼자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뀌고리 한쌍을 보며 자신의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조를 지었으니.

이가 황조가(黃鳥歌)이다.

 

 

 

 

고구려 2대왕 유리왕 (B.C 19년~A.D18년)

 

고구려 유리왕은 이처럼 개인적으로는 불운한 삶을 살았지만 정치적.군사적으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으며 11년에 선비를 쳐서 속국으로 삼고 주위의 여러나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시켰다.

22년에는 도읍을 국내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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