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제동맹:신라백제동맹,무령왕,동성왕

2015. 5. 26. 23:00

 

때는 백제 동성왕 시절.

 

당시 백제는 북쪽의 고구려를 막기 위해 신라와의 동맹관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

동성왕은 신라의 소지와에게 사신을 보내 양국 간의 혼인을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신라에서도 동성왕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어 왕실의 가까운 친척인 이찬의 딸을 백제로 보내 동성왕의 왕비가 되었다.

 

 



 

동성왕 재위15년봄 고구려가 신라를 쳦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동성왕은 3,000여명의 군사를 보내 신라와 함께 고루려를 물리쳤고.다시 고구려가 백제의 치양성을 공격하였을 때는 신라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구해주는 등 양국의 관계 나제동맹은 더욱 친밀해졌다.

 

 

이후 고구려의 위협이 약해지자 동성왕은 아름다운 궁녀들과 유흥을 즐기며 정사에 소홀했으니.이에 반기를 든 신진세력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허나.동성왕이 펼친 일련의 외교정책은 한성을 빼앗긴 이후 움추러든 백제 왕실의 지배 기반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왕이 무령왕이다.무령왕은 정치를 안정시키며 백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무령왕은 고구려와 말갈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 남조 양나라에게 두 차례 걸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강화하였고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자 창고에 있는 양식을 풍어 구제하고.전국에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이나 충성스러운 신하를 파견하여 지방을 강력히 통제하였다.

 

 

 


 

 

이후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기고 나라이름를 남부여로 칭하며.중앙에 22부를 두고 지방을 5부.5방제도로 정비하여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성왕은 신라와 동맹 관계(나제동맹)를 유지하며 고구려의 도살성을 쳐서 빼앗고,신라와 함께 한강 유역을 공격하여 고구려에게 빼았겼던 6군을 되 찾았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이 나제동맹을 깨고 고구려와 밀약을 맺은 후 백제를 쳐들어오게 된다.

성왕은 믿었던 신라 진흥왕의 배신에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했지만

안타깝게도 패배 신라군에 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 백제는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에서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로 바뀌게 되었으며

120년에 걸친 나제동맹은 완전히 깨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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