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전성기:백제 근초고왕 업적과 백제와 일본

2015. 5. 24. 14:00


이전 고구려역사 시간에 고구려의 전성기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이라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럼 백제 전성기 시절은 ?

 

 

백제의 전성기 시절은 상대적으로 아주 짧습니다. 바로 근초고왕 시절은 우리와 일본이 링크되면서 아직까지 논란이 있는 부분시절이죠.이러던 백제의 전성기 시절은 고구려 전성기 시절 양국전쟁과 맞물려 백제는 퇴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이때 고구려의 왕은 광대토대왕입니다.

 

 


근고초왕


 


처음 백제는 힘이 약하여 마한 왕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했지만 비류의 형인 온조가 합류하면서 주변 작은 세력을 통합하면서 연맹국가로 발전합니다.

 

그렇게 국력을 키운 백제는 1세기 중엽 마한을 공격하고 서북지방의 낙랑과 동북 지방에 막갈을 방어하면서 국가체제를 갖추게 되는데요.이는 고이왕 시절이며 이때 중앙관등제인 6좌평과 16관등제를 마련하고 집권력을 강화하면서 백제가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할 수 있습니다.

 

 

 


백제 전성기 근초고왕


 

 

이윽고 다음으로 등장하여 백제 전성기를 맞이한 왕은 근초고왕으로 4세기 후반입니다.

 

 

 

근초고왕은 고이왕 때 정비된 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대대적인 정복사업을 시작합니다.

우선 남으로는 마한의 나머지 세력을 복속시키고 전라도 남해안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낙동강 유력의 가야세력 또한 손을 뻗었으며 북방으로는 고구려를 쳐들어갔는데.

369년 치양성에서 시작된 백제와 고구려의 싸움 371년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 합니다.

 

 

이때 백제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는 3만 명를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침공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킵니다. 그리하여 백제는 지금의 경기.충청.전라도.강원도.황해도를 차지함으로써 역사상 백제의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면 최고의 백제 전성기를 과도하게 됩니다.

 

 

근초고왕 업적


 

 

 

백제 근초고왕은 대외활동 또한 활발하게 전개하여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서쪽으로는 중국의 동진.남쪽으로는 왜와 무역을 하면서 국제적인 상업국가로 떠올랐으며 그 당시를 해양제국이란 말로도 불립니다.

 

또한. 백제 근초고왕은 백제의 수도를 한산(지금의 서울)로 옮기고 중국 남조의 문화를 받아들여 백제의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왕인과 아직기 등을 일본으로 보내 유교경전을 전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왕이나 왕족들에게 직접 강의를 했으며 이때부터 문자를 사용한 일본은 아스카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칠지도


 

 

여기서 칠지도라는 당대의 금석문 자료로 칼에 새겨진 내용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 칠지도는 근초고왕 시절 만들어졌으며.이는 백제 왕이 일본의 왕에게 내려준 것으로 볼 수 있으며.즉 당시 일본 왕은 백제의 신하로 여겨졌다는 설입니다.

 

 

이 부분은 아직도 양국에 논란이 있는 부분으로 정확한 사실인지는 아무도 확신하기 힘듭니다..다만 최근 발견되고 있는 국내 백제 무덤에서 일본 관련 자료가 공개되면서 그 설에 신뢰를 더 하고 있기는 합니다.

 

 


백제와 일본



 

375년 백제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은 물러나고.그의 아들인 근구수가 왕위에 오르자

고구려는 다시 백제를 공격하고 수곡성을 함락시킵니다. 이를 계기로 백제와 고구려는 수년간 끊임없는 전투를 펼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백제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사. 달리 말해 백제의 쇠락과 고구려의 부흥이된 전쟁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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