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연산군 인수대비를 죽이다.

2015. 6. 8. 23:30

갑자사화,연산군 인수대비를 죽이다.




연산군의 분노



연산군이 폐비 윤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간신 임사홍때문이었다.그는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의 사위였고,그의 아들 광재는 예종의 부모이며,숭재는 성종의 부마로 왕실의 측근이었다.그러나 성종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겨 등용하지 않았다.때문에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어떻게든 임금의 환심을 사서 권력을 누리고 싶었던 임사홍은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과 모의하여 폐비 윤씨 사건을 연산군에게 일러 바쳤다.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알게 된 연산군은 인수대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성종의 후궁 엄 숙의와 정 귀인을 죽이고,그들의 자식인 안양군과 보양군을 변방으로 귀향 보낸 뒤에 죽였다.한편 연산군이 포악한 행동을 꾸짖던 인수대비는 연산군에게 몽둥이로 머리는 맞은 후 화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피바람이 분 조정



정숙의와 엄귀인을 죽인 여산군은 윤씨를 왕비로 복위하려 하였으나 권달수,이행 등이 반대하자 권달수를 죽이고 이행을 귀양 보냈다.이어 입직승지에게 윤씨가 폐비된 일의 자초지종과 사약을 내린 경위를 적은 시말단자를 적어 올리라고 명하여 윤씨에게 죄를 엮어 씌운 사람,윤씨 폐출을 반대하다 벌을 받은 사람,사약 공론에 참여했거나 이의 부당함을 아뢰지 못하고 어명을 그대로 따른 사람들의 명단을 받았다.연산군은 이를 바탕으로 조정에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다.







갑자사화



연산군은 윤씨에게 사약을 전했다는 이유로 이세좌에게 사약을 내렸다.이세좌는 연회에서 연산군이 술을 돌릴 때 어의에 술을 엎지르는 실수를 저질러 미움을 샀고,이로 인해 무안과 온성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거제도로 이배되던 중이었다.


이후 연산군은 윤씨 사사와 관련된 신하들을 모두 잡아들여 26간이라 이름하고 죄를 물었다.26간은 윤필상을 비롯하여 26명인데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죽였고,한명회,정인지,정창손 등 죽은 사람은 부관참시로 다스렸다.연산군 10년에 일어난 이 사화를 갑자사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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