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케메네스 왕조의 탄생과 페르시아인

2015. 6. 19. 11:30

단명으로 끝난 아시리아 제국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기원전 1530년경 고바빌로니아 왕국이 히타이트에 의해 망하자 카시트 왕조와 미탄니 왕국 등 여러 왕국이 혼재하는 혼란의 시대를 맞았다.그러나 기원전 9세기가 되면서 북메소포타미아의 상업 민족이었던 아시리아인이 두마리 말이 끄는 전차와 기병 등으로 무장한 군대를 조직하여 정복전쟁에 나섰다.

 

아시리아인은 많은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했다.저항하는 도시에 대해서는 시체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고 약탈을 일삼았다.이런 가차 없는 기세로 기원전 7세기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아시리아는 정복지에 가혹한 세금을 매겼고 피정복민의 전통 종교를 부정했으며 중앙집권적인 지배체제를 통해 군사의 의무를 부과했다.

 

이러한 강압적인 지배는 피정복민의 반란을 가져왔고,결국 기원전 612년에 멸망하고 만다.그 후로 4개의 왕국이 함께 성장했다.

 

 


메케메네스 왕조


 

아케메네스 왕조의 탄생

 

다음으로 오리엔트를 지배한것은 페르시아였다.이란 고원의 남서부에서 일어난 페르시아인은 네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고 기원전 525년 오리엔트를 재통일했다.바로 아케메네스 왕조이다.페르시아 제국은 풍습과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등 정복한 이민족에게 관대하게 대했다.수도는 수사(정치 중심지),바빌론(겨울궁전),에크바타나(여름궁전) 등 3개의 도시로 정하여 계절마다 순환시켰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수사와 소아시아의 사르데스를 잇는 약 2,400km의 간선도로(왕의길)에 관해 언급하면서,상인이 3개월 걸리는 길을 왕의 사자는 일주일 만에 주파했다고 적고있다.세계 제국은 그렇게 잘 갖춰진 도로망에 의해 유지되었다.

 

 

페르시아인

 

367톤의 은

 

제국의 기초를 닦은 제3대 다리우스 1세는 전 국토를 20개의 주로 나누어 중앙에서 페르시아인 총독을 파견했다.총독은 여러 민족의 지배층을 하급관리로 삼아 은과 금으로 세금을 거두어들였다.왕이 모은 은은 1년에 약 367톤이나 되었으며 이것으로 금화와 은화를 주조했다.

 

다리우스1세는 흑해 연안의 기마 유목믹민 스키타이와 지중해의 그리스로 원정(페르시아전쟁)했는데 둘 다 실패했다.제국은 기원전 330년에 알렉산드로스의 원정군에게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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