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조 페르시아

2015. 6. 20. 11:30

 

유목민의 나라,파트티아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기원후 7세기 중반에 걸쳐 서아시아에는 파르타이와 사산조라는 2개의 페르시아인 대제국이 건설되었다.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재배권을 둘러싸고 로마 제국과 격렬한 싸움을 되풀이했다.

 

파르티아는 카스피 해 남쪽의 유목민족의 페르시아인이 서아시아의 농경사회를 정복하여 세운 국가였다.그래서 서아시아에서는 외부에서 침입한 정복왕조로 여기고 있다.그때까지 말에게 신기던 짚신을 대신해 편자를 발명한 파르티아 왕조는 전형적인 기마민족 국가였다.

 

강한 국대를 가진 파르티아는 로마 제국과의 싸움에서 종종 슬리를 거두었다.또한 한제국과 로마제국의 중간에 위치하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비단 매매를 중심으로 하는 중계묵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파르티아의 미트라교는 동서세계로 전해졌다.로마제국에서는 민중들 사이에 군신 미트라의 신앙이 퍼져나가 그리스도교와 대등할 만큼 번성했다.동방에 전해진 미트라는 불교와 융합해 미래불인 미륵이 되었다.미륵은 당 제국과 신라,아스카 시대의 일본에서 많이 믿었다.

 

 

 

사산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전통을 부활한 사산조 페르시아

 

 

파르티아 이후에도 역시 페르시아인의 나라인 사산조가 세워졌다.사산조는 예전의 아케메네스 제국의 부흥을 꾀한 복고적인 제국으로 아케메네스 왕조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가 이어져 내려와 경전 <아베스타>가 편찬되었다.왕은 광명의 신'아후라마즈다'의 대리인으로 절대적인 권력과 권위를 지녔으며 대규모의 관료기구를 지배했다.

 

사산조는 쇠퇴기에 접어든 로마 제국을 괴롭혔는데 3세기 후반에는 황제를 포함한 7만의 로마 병사를 포로로 잡아 카파도키아까지 영토를 넓혔다.동방에서도 중앙아시아부터 인도 북부까지 세력을 넓힌 쿠샨왕조(1세기-3세기)를 명망시키고 넓은 영역을 지배했다.또한 실크 로드를 지배하여 주변 여러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예를 들면 로마 제국에서 이단으로 배척당한 네스토리우스파의 그리스도교가 사산조를 통해 동방으로 전해져 당 제국에서 경교로 믿었다.조로아스터교와 불교가 융합되어 탄생한 마니교는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와 프랑스 남부로,동쪽으로는 중국에까지 전해졌다.또한 사산조의 정교한 금은 세공,유리그릇,직물 등의 뛰어난 공예품은 실크로드를 통해 당 제국의 국제도시 장안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세력을 자랑하던 사산조도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해 온 에프탈족 및 비잔틴 제국과 싸우느라 힘이 약해졌다.7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부흥한 이슬람교도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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